초등학생 때부터 나의 꿈은 언론인이었다.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, 구체적으로 어떤 언론인이 되고 싶은지는 잘 몰랐다. 그저 PD, 기자, 앵커 등 다양한 언론인들의 모습을 동경하며 막연하게 꿈을 키울 뿐이었다. 대전대성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중학교 때까진 보이지 않던 친구들의 새로운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. 법관의 꿈을 가지고 재판동아리를 만들거나 PD의 꿈을 가지고 학교홍보동영상을 제작하는 등 친구들이 저마다의 꿈을 향해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.
주어진 학습과 스스로 찾는 학습
강원과학고등학교 김 동 욱
학교와 맞지 않는 내 학습 스타일
중학교 2학년 1학기 때 나는 전교 등수를 입에 올릴 만큼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. 당시 원주중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여러 학원을 전전하며 공부에 열을 올렸다. 이런 주변 상황에 자극을 받아 나도 학원에 등록했지만 학원 수업을 몇 번 들어보고는 바로 그만두었다. 학원에서 시키는 대로 기계처럼 공부하는 것이 싫었다.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고민하며 탐색하는 것이 내게 더 잘 맞았다. 선호하는 공부법에 대한 믿음을 갖고 스스로 공부하다 보니 공부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수용하는 것에도 익숙해졌고 컨디션을 조절하는 데도 비교적 노력해졌다.
점수 높이기가 아닌 나의 가치를 찾아가자
인천진산과학고등학교 김 태 정
나만의 방식으로 만들기
'손대는 물건마다 망가뜨리는 사고요정!' 장난감, 학용품 등을 비롯해 이웃집 형의 물건까지 망가뜨리는 일이 잦던 어렸을 때 '사고요정'으로 불리는 날이 더 많았다.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흔한 물건을 흔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게 재미없었던 것 같다. 나만의 방식으로 색다르게 레고를 만들거나 볼펜을 샤프로 바꾸어 보는 등 설명서대로 물건을 사용하지 않아 '사고뭉치'라 불렸다. 이런 특이한 습관을 가진 내가 내 방식대로 자유롭게 물건을 바꾸고 만들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난 건 중학교 때다
인성 영역
부족은 완벽의 충분조건이다.
대건 고등학교 이 은 강
불행한 소년에게 희망은 없었다.
어려서부터 내가 제일 많이 들어온 말은 "불쌍하다." "안됐다." 였다. 무엇이 그토록 동정을 불러일으키고 나를 불쌍하게 만들었을까. 태어난 지 17개월이 되던 해, 나는 반신화상을 입었다. 부모님께서 잠깐 집을 비운 사이 이것저것 집안의 물건들을 건드리다가 우연히 급탕기를 튼 것이 화근이었다. 부모님이 화상을 입은 나를 발견하고 급히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의사 선생님은 내가 살 확률이 30%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.